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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inko S1E01_조상님들 모셔가 한 좀 풀어 주이소 (1)

새로운 미래 2022. 5. 1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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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티비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파친코'를 바탕으로 영어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하기로 필자가 마음 먹게 된 동기는 드라마가 담고 있는 내용과 배우들의 명연기도 한몫을 담당하긴 했지만, 무엇보다 한국어 대사를 영어로 번역한 수준에 놀랐기 때문이다.

우리말 표현에 담긴 의미와 제대로 상응하는 영어 표현을 찾아 적재 적소에 사용한 번역가의 수준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문득 필자가 감탄한 내용을 학습자들과 공유하면 그분들이 영어를 제대로 정복하는 일이 보다 쉽고 빨라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 확신이 필자만의 것이 아닐 거란 확고한 믿음을 기반으로 이 글을 끝까지 연재해 볼 생각이다.


 

파친코의 첫 장면은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시대 배경을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산길을 걷는 듯한 무거운 발걸음 소리 (trudging footsteps)가 바람부는 소리 (blowing wind), 나뭇잎과 잔가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rustling leaves and branches)를 바탕으로 함께 들려 오는데.. 누가 어떤 사연을 들고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양진 (선자모: 정인지)

선자의 엄마인 양진이 조그만 보따리 (褓따리: fabric-wrapped package)를 가슴에 소중하게 쥔 채 어딘가를 응시한다.

무엇을 저리 한참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What is she staring at)?

무당 (전소현)의 집

양진은 산중 외딴 곳에 살고 있는 무당 (巫堂)을 찾아 온 것이다. 하지만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한동안 먼 발치에서 그 집을 그저 응시만 한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박복(薄福)하다'는 '복이 없고, 운수가 사납다'는 말이다. 여기서 '사납다'는 '사정이나 상황이 나쁘다'는 말이다.

박복하다를 뜻하는 영어 표현으로 'unfortunate, unlucky, not fortuante, with no luck' 등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조금 길게 표현하자면, 'living one's whole life with misfortune'이라 번역할 수도 있을 듯하다.

 

자신이 세상이 태어나게 되어 어머니의 고생이 더욱 가중되었다는 말에서 양진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애틋함 (affection)이 얼마나 뿌리 깊은 (deep-rooted) 것인지 느낄 수 있다.

 

'지까지 나아가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는 말은 다음과 같은 영어 표현으로 대치해 볼 수도 있겠다.

Bringing me into the world added a great burden for her (to bear). (괄호 친 표현은 생략해도 무방하다.)

'억수로 어릴 때'란 '심하게 어릴 때'란 말인데, 영어에서는 '상식적인 예상보다 어릴 때 (younger than expected)'란 사고방식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어떤 양이나 수치 혹은 나이 등이 예상보다 더 적다 (smaller)는 의미를 강조하고자 할 때, 영어에서는 보통 only를 사용하는 데, '상대방에 대해 예의와 격식을 갖춰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only' 대신 'but'을 쓰기도 한다. 이런 말을 영어에서는 '격식체 (formal)'라고 한다. 'but'을 쓴 것으로 봐서 '양진이 무당에 대해서 내심 상당히 어려워하고 있구나!' 하는 상황을 추론해 볼 수 있겠다.

물론 'She died when I was very young.'이란 쉽고 간결한 표현을 대신 써도 무방하다고 본다. 하지만 원어민 시청자가 느끼는 맛은 사뭇 달라질 거라고 본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술'만' 잡쉈다는 말은 그 전보다 술을 엄청 많이 마셨다는 말, 즉 커다란 상실감으로 인해 술에 의존하는 버릇이 들었다는 말이다. 영어에도 이처럼 '어떤 계기로 인해 (나쁜) 버릇이 들다'라는 뜻에 상응하는 표현이 있는 데 바로 'take to (the bad habit of) something'이다.

교양있는 원어민 강사에게 'In his grief, my father took to drink.'의 뜻이 뭐냐고 물으면 아마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지 않을까.

'My father started to drink a lot of alcohol regularly, because he was depressed about her death.'라는 뜻이라고.

 

어린 왕자가 여행 중에 만났던 술꾼 (drunkard)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양진이 털어 놓는 '속사정 (inside story)'을 듣고 있는 무당 (전소현분)과 아역 배우

'끌베이'란 단어를 난생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걸뱅이'라는 경상도 사투리의 '쎈 말'일까?

특이한 점음 우리말 표현은 분명 '마을을 돌아다니며 빌어 먹고 다녔다'는 말인데, 번역가는  'go around'나 'beg'이란 동사 대신 'force'라는 동사를 사용했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그 답은 영어 동사 'force'가 사용되는 의미 맥락에 있다. 이는 '상대방이 원치 않는 일이지만 위협 등을 통해 하도록 강요하다' 또는,

'처한 상황이 원치 않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도록 강요한다'는 의미 맥락에서 사용된다.

어린 나이에 언니들이랑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구걸을 하며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하지만, 가정을 책임져야 할 아버지는 상실감에 못이겨 술독에만 빠져있으니, 생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했던 상황이 아니었겠는가?

My three sisters and I were forced into the villages to beg.은

The situtation then forced my three sisters and me into the villages to beg.이란 문장의 수동구문이다.

 

달리 생각하면,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음주 습관, 이렇게 '연이어 발생하는 사건들 (series of events)'의 결과로 어린 나이에 구걸 생활을 하게 된 결과를 맞이했다는 식으로 표현을 달리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연이어 발생하는 사건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초래한 상황'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영어 구문인 'wind up' 역시 사용 가능할 듯하다.

(And so) My three sisters and I wound up going around the villages to beg. 이렇게 말이다.

자신이 결혼하게 된 사정을 털어놓을 때 양진이 상당히 겸연쩍어하는 (embarrassed)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부분 영어 대사 번역본을 보면서 필자가 학습자들께 알려 주고 싶었던 내용은 우리말과 영어식 표현 방식의 차이이다.

중급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갖춘 학습자에게 이 부분을 영어로 옮겨보라고 하면 어떤 식으로 접근할까?

아마 우리말 사고 (표현) 방식을 그대로 따라 다음과 같이 영어로 옮기지 않을까?

'going near Donsam-dong, and there was a boarding house, the son of the family had a cleft lip so he was not able to be married.'

 

하지만 번역가는 이대로 번역하지 않고, 영어식 사고 (표현) 방식에 따라 '어떤 가정에 아들이 하나 있다 (a family had a son).'는 뼈대로 압축하고 거기에 다른 의미를 갖다 붙이는 식으로 번역했다. 즉,

 

'Go near Donsam-dong, and there is a boarding house, the son of the family' 부분은

'a family with a boardinghouse near Donsam had a son'으로,

 

'had a cleft lip , so he was not able to be married' 부분은

'with a cleft lip who was not married'라고 각각 압축적으로 바꾸어 번역하였다.

 

영어 내공이 부족한 학습자들에게 상당히 어려운 내용으로 다가갈 수도 있겠지만, 우리말에 상응하는 영어 표현을 찾고자 할 때, 때론 이런 '사고 (표현) 방식의 차이를 넘나들 수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영어를 제대로 익히고자 한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 생각해 본다.

 

글의 내용이 가볍지 않은 관계로 이쯤에서 첫 글을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모쪼록 포기하지 말고 다음 글에서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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